취암 (醉巖)

취암은 무오사화(戊午史禍)후 많은 선비들의 한 많은 시들이 있는 곳이다.

많은 詩句가 새겨져 있어 무오사화 후 많은 선비들이 한을 달래던 곳이다.

 

 

 

 

 

 

기암청석이 많아 바위에 많은 詩를 암각(岩刻)해 놓았다

취암을 맨 처음 읊은 이는 호(號)가 일취(一醉) 이름은 도필락(都必洛)이며, 원운(原韻)은 성(聲)과 정(情)이다.  일취의 이름을 따 바위 이름도 취암이라고 단정하게 해서(楷書)로 써 넣었다. 취암 바위의 아래 부분에 시(詩)를 짓고 새기게 된 내력을 이관용( 李觀瑢)이 적어 놓았다.

일취옹(一醉翁) 도필락이 시와 술로 정을 토로하여 친구들과 함께 문주회(文酒會)를 열고 이곳에서 술잔을 띄어놓고 시를 읊었고, 아들인 우엽(宇曄)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돌에다 시를 새겼으므로 아버지를 사모하는 정이 남달리 깊었다. 사람은 떠났지만 시는 오히려 남아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도광(道光)18년 무술(茂戌)이라 새겨졌으니 곧 조선 헌종(朝鮮憲宗)4년(1838)으로 지금으로부터 163년 전이다.

취암에 5수의 시를 짓고 새기게 된 내력이 적혀있다. 아들인 우엽(宇曄)의 봉화취암(奉和醉巖) 시 1수, 그 외 3수, 김윤하(金允河)의 시 1수, 운금천(雲錦川) 바위에 김학연(金學鍊)의 시 1수 등 취암을 중심으로 위아래의 4개의 바위에 총 11수의 한시가 새겨져 있다.

시냇가 돌에 취하여 누워

꿈결에 물소리 듣노라

휘날리는 물보라 꽃잎이 떠가니

솟아올랐다 가라앉는 것 또한 세상의 정 일세

 

 

산 겹겹 칼날 세워놓은 듯

물 구비 구비 거문고 소리

한 바탕 덧없는 삶

시정과 주정을 일으키네                                    金萬應 (김만응)

잔 들고 시 읊던 풍류의 자리엔

안개와 물소리뿐

시 읊는 애주가 아니라면

누가 옛사람의 정을 알리오                                  金重呂 (김중여)

우뚝한 바위 천년의 얼굴이요

한결같은 시냇물 만고의 소리로다

양치던 목동 어디 가고

옳고 그른 정 누가 알리오                                   李基煥 (이기환)

 

 

 

 

취암에 도필락 씨의 시에 도광18년(1838년 헌종4년)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는 약1500년경부터 시회를 열고 있었으나 바위에 암각 한 것은 후대에 했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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