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화양읍은

 

화양

남산정상

1999.11.7

해발:870m

--오산이라고도 부르는 청도의 진산--남산(870m)

청도읍 상리와 화양읍 교촌리 각남면 사리의 경계에 있는 청도 남산은 화악산 북쪽에 해당되며 각북의 비슬산에서 뻗어나온 산맥위에 있다. 남산은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주변경치가 뛰어나고 능선곳곳에 철쭉과 진달래 꽃밭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을 뿐 아니라 산행시간도 3시간에서 5시간 정도로 가족산행코스로 적당하다. 특히 능선길에는 산야초들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어 산행의 기쁨을 더해준다.

청도 남산의 등산코스는 다양한데 죽림사에서 시작해 헬기장-정상-한재고개-봉수대-상여듬바위-체육공원-시외버스터미널로 내려오는 종주코스가 청도 남산을 제대로 둘러 볼 수 있으며 산행시간(5시간)도 적당하다. 이 코스를 자세히 설명하면 화양읍 신봉리를 지나 길 건너편에 죽림사라는 푯말이 보이는 (10분 정도 소요) 곳에서 푯말을 따라 시멘트포장길을 100m 정도 올라가면 홍도골과 신기마을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홍도골로 간다.

30분정도 시멘트포장길을 올라가면 무성한 대나무들이 사찰을 보호해 주었다는 죽림사가 남산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서 죽림사의 시원한 우물물로 물을 준비해야 한다. 산행이 끝날 때까지 마땅한 식수가 없다. 우물 우측 숲속에는 청도산악회가 나뭇가지에 매단 빨간리본을 따라 오르면 과수원 중앙으로 난 길을 지나 소나무 숲속을 30분간 올라가면 8부능선에 올라선다.

청도읍내와 저수지 등이 내려다 보일만큼 탁 트인 곳이다. 조금 더 올라 간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급한 경사를 올라서면 정상이 보인다. 여기까지 산행시간은 2시간 정도로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약간만 걸으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청도산악회가 1994년도에 세워놓은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다.

여기까지는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지만 정상에서 내려오는 코스는 좌우로 청도의 이름난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좁은 능선길로 절벽 사이로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한재고개로 가는 길은 봄에는 절벽밑 바위틈새로 연분홍 철쭉이 자태를 드러내고 가을에는 한재고개의 억새밭이 산을 돌아 넘어가는 구름등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특히 이곳의 안개와 구름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은 청도8경 중의 하나로 꼽힐만큼 유명하다. 한재고개를 20분쯤 걸으면 봉수대가 나온다. 여기까지 3시간 걸린다. 남산 봉수대는 남으로는 밀양 분항산 봉수대와 북으로는 팔조령 봉수대와 연결된다. 봉수대에서 상여듬바위로 가는 길은 억새와 진달래가 뒤섞인 꽃밭이다. 중간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상여듬바위 앞으로 내려가는 길이 체육공원으로 가는 하산길이다. 봉수대로 가기 전 좌측길로 들어서면 낙대폭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남산에는 청도8경중 하나인 낙대폭포와 석빙고 신둔사 죽림사 등의 여러 유적과 유물이 있고 등산코스가 다양해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다. 사계절내내 절경을 이루는 낙대폭포는 그중 최고로 손꼽힌다. 이외에도 낙대폭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 신둔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등 등산길이 다양하여 시간과 체력에 따라 마음 맞는 코스를 얼마든지 택할 수 있어서 남산 등산은 더욱 좋다

 

앞 > 서상리 안산에서 바라본 화양읍 소재지  (2003. 4. 30)

뒤 > 남산정상에서 바라본 화양읍  :  화양저수지 와 한내천이 구비처서 흘러 (1999.11.07)

 

화양읍 소재지 전경

전면 : 화양읍시가지 상공에서 바라본 화양읍 소재지 - 청도읍성을 위주로 (2003)

후면 : 서상리 안산에서 바라본 화양읍 소재지  (2003. 4. 30)

 

화양 남산

거북바위

2003. 8.10

 

 

화양 남산

약수터

2002. 4. 21

 

 

낙대폭포

 

 

 

 

 

남산꼴 옹달샘

 

화양 남산

시정골

2000. 4월(春)

--울창한 숲 한기마저 느껴--

청도군 화양읍 소재지에서 동천을 따라 약 2km정도 가면 하늘과 땅이 조화로움을 이루어 빚어낸 천혜의 남산골 계곡이 있다. 청도군의 진산으로 널리 알려진 해발 870m의 남산(일명 오산)은 이 고장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산서지방의 6개읍면을 한눈에 바라보며 마치 포옹하여 감싸고 있는 듯한 명산이다.

옛부터 지역주민들의 경애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으며 갖가지 전설과 선현들의 발자취가 숨쉬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이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남산골계곡은 산의 명성못지않게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이 어우러져 신비함을 연출하고 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기암절벽, 소를 이루며 흐르는 청담옥수같은 맑은 물은 찾는 이들의 가슴속까지 시원한 냉기를 느끼게 하며 골자기를 가득 메운 울창한 숲은 한기마져 자아낸다. 아무리 무더운 날씨에도 이곳에 들어가면 5분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 나온다는 것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이야기다.

옛부터 이 고장 선비들이 즐겨찾던 이 계곡은 자연을 벗삼아 한시를 읊으며 마음을 달래던 흔적들을 아직도 여기 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인이 새겨놓은 싯귀가 남산골을 잘 말해주고 있다.

「석간수는 굽이 흐르는데 바람 새 비소리 들리도다. 종일 일 없이 앉았으니 높은 바위에 그리운 정만 더하누나!」

 

 

화양남산

용주꼴

굴바위

    

화양시정골 백석뢰

이곳만이 흰돌이 있는 여울이다

물밑의 흰 돌이 보석처럼 반짝인다는 여울이다.

취암에서 아래쪽에 있으며 길이 약 150cm의 바위가 비스듬이 숙여져 넘어져 있다.  원래는 바로 서있었으리라 . . .

중국의 명산승개기(名山勝槪記)에 백석애(白石崖)라는 글이 실려있다.

"깍아지른 듯한 층암절벽 숨겨져 날을 듯한 폭포, 여름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시원하고 서늘함을 느끼게 하니 진실로 세상 밖의 아름다운 경치로다"

백석뇌(白石瀨)도 백석애(白石崖)에 못지 않는 절경(絶景)으로 계곡의 물과 짙은 녹음이 상쾌하게 사람의 간담까지 씻어준다

 

청도 동헌(화양초등학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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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현재 옛날 T자형 동헌으로 복원중입니다

 

도주관(객사)

 화양도주관(道州館)

- 조선시대 청도객사 로, 도주는 청도의 다른이름, 조선현종 1670년 경 건립. 현재는 동헌만이 남아있다.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4칸 맞배지붕의 익공집이며 동헌은 정면6칸, 측면 4칸이다. 측화비 및 군수들의 선정비가 있다.

 

 

화양향교(鄕校)

-교촌리에 있으며 조선 선조 원년(1568년) 군수 李宜慶이 고평1리에 처음으로 지어서  60년간 존속하다가  향교사이에 한내가 흘러서 인조4년에 합천리에 옮겼고, 영조 10년(1734)에 현재 위치로 이건했다.

 

 

화양 청도읍성

 

- 성의규모는 청도문헌고(文獻考)에 주위 1,570보(1.88km)이고, 높이는 다섯자 다섯치(1.65m) 여첩(女堞)은) 600척이라 하였다, 문헌에는 경인(1590)에 시작해서 2년에 걸쳐 마쳣으나, 임진란에 파괴되고, 동문(東門), 서문(西門), 북문(北門)은 소실되었다고 한다.

화양읍 서상리, 동상리, 교촌리를 둘러싸고 있던 청도읍성은 원래 토성 이었던 것을 선조 23년(1590년)에 착수하여 1592년(선조 25년)에 준공 하였다. 청도읍성은 고려때부터 있었는데 당시의 성은 석축과 토축을 혼합해서 쌓은 토성으로 성내에는 관아(官衙)객관, 유향소, 군기고, 근민당, 서역기, 작청(作廳)등의 건물이 있었다. 또한 누정(樓亭)으로는 청덕루, 청향루, 죽서루 등이 있었다고 한다.

선조때 황윤길이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와서 일본이 침입해 올 위험이 많다고 조정에 보고 하니 동래에서 서울에 이르는 연도에 가까운 주, 군에 소속된 성지를 일제히 수축 또는 신축하라는 왕명이 내렸다. 이때 청도 읍성도 오례산성, 철마산성과 같이 군수 김은휘에 의해 토성에 석축을 쌓아 올리고 여첩을 쌓고 성의 높이도 더 높혔다.

청도읍성은 주위가 1,570步이고 높이는 5자 5치, 女堞이 600자로 동문, 서문, 북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에 왜적이 읍성을 점령하고 내성을 소규모로 축성하였다 하나 지금은 내성도 없어지고 청도읍성은 8 ~ 900m의 성벽의 殘址(잔지)만 보일뿐 옛모습은 찾을 수 없다.

임진왜란때 읍성은 불타 버리고 동문 서문 두문만 남아 있었던 것을 1669년 (현종 9년)에 군수 유비 (兪秘)가 서문을 건립하고 무회루(撫懷樓)라 하였다. 동문은 1708년(숙종 34년) 군수 임정(林淨)이 소건하고 捧日樓라 하였다. 이와 같이 장엄하던 읍성의 문루는 오랜 세월속에 허물어지고 지금은 동문의 흔적만 남아 있다.

 

석빙고

석빙고외부

 

현존하는 우리나라 最古의 석빙고로 길이 14.7m, 폭 5m, 깊이 4.4m 로써 동서로 길 게 지하에서 잡석을 쌓아 올리고 윗 부분을 화강석 으로 아취형의 보를 4개 올링후 환기구를 설치하고 개석으로 덮고 흙을 덮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흙이 무너지고 개석도 많이 없어졌다. 석빙고의 개석 하나로 잠령탑(누에의 영을 위로하는 탑)을 일본사람이 만들었다.

 石氷庫 내부(우리나라 최고의 얼음 창고)화양읍 동천리

빙고는 청도읍성 북문밖에 토굴된 것이 있었다고 3백여연전의 오산지에 기록 되어 있으나, 도로 개설로 지금은 헌적이 없고, 동천리에 있는 것은 숙종39년(1713년) 2월 11일 착공, 같은해 5월 5일에 준공한 것인데 1959년 5월 1일 보물 제 323호로 지정 되었다. 경주석빙고는 1729년 창녕 석빙고는 1742년에 건립됬다.

 

 

화양 범곡리

낙대(약수)폭포

- 절경지의 피서지, 높이 30m의 폭포로 기암괴석의 깊은 계곡에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룬 가운데 깍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물소리와 함께 일대 장관을 이룬다.

사계절 내내 절경을 이룬다.

봄에는 만개한 벚꼿,

여름에는 짙은 녹음,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깊은 계곡에서 밀려오는 바람이 오삭 추위를 느끼게 하며,

가을이면 오색단풍이 풍벽을 이루고,

겨울에는 흐르던 폭포수가 얼어붙어 흡사 은 병풍을 연상케한다.

--일명 약수폭포인 절경의 피서지--

낙대폭포는 청도역에서 약 3km 떨어진 남산 중턱에 있는 높이 30여m의 폭포다.

기암괴석의 깊은 계곡에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룬 가운데 깍아지는 듯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물소리와 함께 일대 장관을 이룬다.

낙대폭포는 사계절 내내 절경을 이룬다. 봄에는 만개한 벚꽃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깊은 계곡에서 밀려오는 바람이 오싹 추위를 느끼게 하면서 절경을 이룬다. 또 가을이면 오색 단풍이 풍벽을 이루는가 하면, 겨울에는 흐르던 폭포수가 그대로 얼어붙어 흡사 은병풍을 연상케 한다.

낙대폭포는 옛부터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약수폭포라고도 불려지고 있다. 그래서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이 찾아들어 웃통을 벗은체 폭포수를 맞으며 신경통도 고치고, 더위를 식히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나눈다.

 

 

남산(오산)의 봉수대

 

- 남산 봉수대는 남으로는 밀양 분향산 봉수대와 북으로 팔조령 봉수대와 연결된다.

 

 

신둔사(薪芚寺) :

산의 정령이 숨어 사는 곳...

1173년 (고려 명종 3년)에 보조국사가 창건하여 봉림사라 이름 하였고,

1667년(조선 현종 8년)에 상경대사가 중창 하였다.

- 산의 정령이 숨어 사는 곳 -

화양읍 동천리의 남산 중턱 남산골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데, 물이 맑고 경치가 아름다우며 울창한 산림에 세곡의 티끌 하나도 묻지 않아 정령이 숨어 사는 곳 같은 감을 준다.

이 절은 1173년(고려 명종 3년)에 보조국사가 창건하여 봉림사라 이름하였고, 1667년(조선 현종8년)에 상견대사가 중창하였다.

1878년에 절을 중수하고 절 이름을 신둔사로 개칭하였으며, 1926년에 송호화상이 중창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조선조 중엽의 것으로 추측되며 대웅전, 칠성각, 산령각, 영각, 요사 등이 있고 오층영산보탑이 있는데 이는 근대작(일제강점기)이다.

( 교 통 )  청도역 → 화양 → 남산골(폭포) → 신둔사(30분 소요)

 

 

신봉리 죽림사(竹林寺) : 원래 화남사라 하여 610년(신라 진평왕 32년)에 법정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일명 대절로 알려져 있어--

화양읍 신봉리 남산 중복에 자리하고 있는 이절은 원래 화남사라 하여 610년(신라 진평왕 32년)에 법정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그 당시 법정대사는 이 절을 창간한 후 선덕여왕의 명을 받아 불교 포교의 화친사로 일본에 건너가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왕은 그 충성을 갸륵하게 여기고 왕명으로 이 절 옆의 땅 약 900여 결을 하사하고 대나무를 심게 하였다. 그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사찰이 대나무 숲속에 있게 되자 절 이름을 죽림사라 개칭하고, 절의 전성시대를 이루게 되었다. 그 뒤 허물어진 사찰을 고려 명종때 왕사였던 보조국사가 중건하였고, 조선조 태조 때는 무학대사가 중수하였다 한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의 병화로 대웅전과 명부전이 불타 없어지고 보광전만 남은 것을 승려들이 인덕당을 새로 건립하였다.

근래에 이르러 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토록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보광전, 칠성각, 산령각, 요사 등이 약간의 전답과 함께 남아 있다.

유서 깊은 큰 대나무 밭은 오랜 세월의 변천으로 없어지고 지금은 대나무 수십그루만 남아 있어 옛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근래에 절의 축대를 새로 쌓고 법당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 교 통 ) 청도역 → 화양(향교, 도주관, 석빙고) → 신봉리 → 죽림사(30분 소요)

 

 

화양 대적사(大寂寺)

- 기단축대의 뛰어난 용비어천도, 송금리의 동학산 기슭(남성현터널입구에옆)에 있다.

신라 헌강왕 867년 보조선사가 창건, 당시 규묘가 큰절,

극락전 기단소매돌에 龍飛御天圖가 새겨저 있어 초창 때 웅장한 사찰.

화양 송금리

--기단축대의 뛰어난 용비어천도--

화양읍 송금리의 동학산 기슭(남성현 구터널 입구 옆)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절은 신라 헌강왕 때인 876년경에 보조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당시 규모가 큰 절이라는 것을 현재 남아있는 극락전의 기단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극락전은 1984년에 보물 제 836호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극락전 기단소매돌에 용비어천도가 새겨져 있어 초창 때의 웅장한 대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유서 깊은 조각품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들에 의해 불타 폐허가 된 것을 1635년 중건하고 1994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건물로는 극락전, 삼성각등이 있다. 이 사찰의 역사를 말해주듯 절 입구의 바른 쪽 계곡에 10여기의 부도가 있었는데 6ㆍ25동란의 혼란통에 없어지고 지금은 1기가 외로이 남아 있다.

( 교 통 ) 청도역 → 남성현 → 대적사(25분 소요)

  

 

화양읍 합천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 화랑의 화신인 미륵으로 불려온 아미타불

-화양 합천리의 속칭 강당들에있는  합천리 석조아미차여래입상은 마능 주민들의 구전으로 오랜 기간동안 미륵으로 불러왔다.


-
이 석불의 외형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광배의 높이가 200cm, 폭이 92cm이며,

 

-불상의 높이는 160cm, 폭 55cm의 크기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278호

 

-조성년대 : 7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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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리 석조 아미타여래 입상

화양 합천리에 있는 "합천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마을 주민들의 구전으로 오래 동안 미륵으로불리어 왔다. 이 석불은 광배의 높이가 200cm,폭이 92cm이며 불상의 높이는 160cm, 폭 55cm의 크기이다.

광배와 불상을 한 개의 화강암으로 조각하였는데 광배는 주형광배로서 광배주위에는 화염문이 조각되었고 두광과 신광의 구분이 되어 있다. 자세는 입상으로 몸은 살지고 얼굴은 통통한 편이며 등신불이다. 머리위의 육계는 크고 나발이 뚜렷하며 눈은 은행열매형이다.

이마에 백호의 흔적이 있으며 입은 자비스런 미소를 지고 있다.

법의는 양쪽 어깨를 다 덮은 통견이고,두꺼우며 하단까지 내려왔고 목에는 삼도중 2개가뚜렷하나 1개는 희미하다.

오른손은 미타인중 구품인을 짓고 있으며 가슴부위와 하단부위는 대칭구조이다.

대좌는 시멘트로 매몰된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보이지 않고 있다.

자비스럽고 아름다운 이 불상은 외형으로 보아 아미타여래불상인 것을 짐작할 수 있으나 지역주민들이 늘 미륵으로 불러 왔으며 이 불상이 있는 땅도 소유자가 미륵으로 토지대장에 기록되어 있다.

불상이 있는 곳은 오산지와 청도 문헌고에는 대사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구전으로는 천노사(天老寺 또는 天勞寺)로 불리어 왔고 고려시대와 조선조 초기까지 현청지로서 옛날의 관도(官途)가 이곳으로 통과하였다.

이곳에서 철제의 칼과 창이 출토된 일이 있으며 신라시대에 화랑의 교육장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다.

합천리의 석불이 외형적으로 아미타여래의 형식을 띄고 있어 신라의 미륵신앙 이후 번성하였던 정토신앙의 산물이라고 보아도 이제까지 미륵으로 구전되어 내려온 것은 화랑과 미륵과의 관계로 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향토사학자들의 연구가지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석불의 조성년대를 감은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720년대)과 비슷하나 더 고식인 점을 들어 7세기 후반이나 8세기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 문화재가 근래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87호로 지정되었으므로 깊은 연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민간에서 득남을 위한 잘못된 기본적인 신앙의 결과로 이 불상의 눈과 귀가 많이 훼손된 점인데 이러한 잘못된 슥설과 풍습은 하루 빨리 근절되고 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합천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천로사의 존재를 알려주는 유일한 문화재일 뿐 아니라 그 부드럽고 자비스러운 조각 솜씨로도 귀중한 문화재이다.

 

화양읍 범곡리 지석묘군 : 남방식 지석묘의 대표적 군집

원시시대무덤 형식은 고인돌(지석묘), 돌부지 무덤(적석총), 돌널무덤(석관묘),돌깐무덤, 움무덤 등이 있으며, 이중 대표적인 것이 돌무덤이다. 이 고인돌의 상석은 제일 큰 것이 305cm×250cm×170cm의 크기로 그리 큰편은 아니다 . 이 지석묘군은 당초에는 약 40기에 가까운 집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34기가 남아있으며 이서국시대 그 이전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화양5일장

2000.5.10

화양초등학교 교문이 보인다

화양시장

 

복숭아꽃

 

복사꽃

만발한

화양

남산꼴

99.4.15

 

 

 

 

 

 

청도복숭아

유례비

 

화양읍

신봉리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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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22

신봉새터

청도반시

 

화양 줄당기기

 

화양

큰줄당기기

 

위치 : 관저땅

동상.서상경계

 

 

 

2001년도

청도읍

고수부지

줄다리기 원래의 기원에 대하여는 확실치 않으나 화양읍에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 전후로 화양읍을 중심으로 동, 서로 편을 갈라 남녀노소의 마을 사람들이 줄을 당기어 승패를 다투고 그 해의 흉풍화복을 점치기도 한 민속놀이다.

화양 줄다리기는 조선 정조 3년(175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화양읍 동상리와 서상리의 경계지점인 강지땅의 원귀를 달래기위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

관저땅이 청도읍성의 북문 밖의 형장으로, 비가 내리는 밤에 원귀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와 지세를 누르기 위하여 줄다리기를 하였던 것이다.

문헌상으로 18세기에는 도주줄, 19세기에는 영남줄로 불렀다고 하며 20세기 초반에는 읍내줄 1983년부터는 화양줄이라고 부르고 있다.

 

 

유등연지

(연못)

군자정

유등1리

소재

유등연지

유호연화는 화양읍 유등리에 있는 연못으로 일명 신라지라 부르며 둘레는 약 700M, 깊이 2M 정도이다. 이 못이 연꽃으로 유명하게된 것은 무오사화로 이주 선생이 유배되고, 동생 이육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못을 넓히고 연꽃을 심은 후 부터다. 여름이면 수면을 덮은 붉은 연꽃과 탐스럽게 영글은 연밥이 군자정의 모습과 조화를 이룬 속에, 낚시대를 드리운 강태공의 평화로운 모습은 유호연화의 운치를 한결 돋구어 준다. 특히 추석을 전후하여 시집간 여인들이 친정에 돌아와서 이곳에서 만나는 장소로 이용 되었으며, 선남선녀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정월달의 한내강 (음력 1월 15일)

21세기 시작을 알리는 한내강의 황홀한 일출은 화양인들의

풍요와 안녕을 예언 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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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 화양 상설소싸움장

상설소싸움장 실내 규모 12,000석

 

◇청도 상설 소싸움장 기공식◇

⊙기공 - 일시 : 2000. 5. 30.14:00 ─장소 : 청도용암온천 앞

⊙개요 - 위치 :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202번지일원,- 부지면적: 57,400㎡(약17,360평)

⊙건립규모 - 층 수 :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 33,593㎡ (약 10,161평)

 - 경기장 : 지름 45m 원형 ( 3m 안전지대)

 - 지붕: 전체 돔형식(전천후경기장)으로 개폐식 시공

 - 관람석 : 12,000석(VIP, 일반, 장애인석) - 주차장 : 434대(지하 412, 지상 22)

 - 기타: 우사, 광장, 운영 및 공공편익시설 등

⊙준공 : 2004년 2월말경 개장할 계획임.

⊙사업비 : 299억원 - 국비, 지방비, 민자

⊙사업시행자 : 청도군

⊙시공자 : 동성건설(주)

⊙설계자 : (주)건정종합건축,(주)도우엔지니어즈

 

주구산 파랑새 분수다리

 

청도공설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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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네 홈으로 이동화양 13회 홈으로 이동회양 13회 추억의 엘범으로